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로이센-프랑스 전쟁 (문단 편집) === [[독일 제국|독일 제2제국]] === ||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Anton_von_Werner_-_Kaiserproklamation_in_Versailles_1871.jpg|width=400]]|| || [[독일 제국]] 선포식[* 당시 비스마르크는 남들처럼 군청색 제복을 입고 있었다. 하지만 황제 빌헬름 1세의 특별 지시로 눈에 띄는 흰색 제복을 입은 것처럼 묘사됐다.] || 결국 해가 바뀐 [[1871년]] 1월,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고 빌헬름 1세는 비스마르크의 설득으로 1월 18일, [[베르사유 궁|베르사유 궁전]]에서 [[독일 제국]]([[제2제국]])의 탄생을 선포하고 초대 황제로 즉위했다. 1월 18일은 1701년 [[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|브란덴부르크 선제후]] [[프리드리히 1세(프로이센)|프리드리히 3세]]가 [[프로이센 왕국]]을 개창하며 프리드리히 1세로 즉위하고 대관식을 거행한 날이다. 개전 초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어쩌다보니 1월에 종전되니 비스마르크가 역사적인 날짜를 활용하여 독일 제2제국을 출범시켰다. 독일 제국 황제는 군대와 제후국 군주들의 추대로 이어진 것이지 시민 계급에 빚진 게 없었기 때문에 독일 제국 시대 내내 군과 황제는 입헌에도 불구하고 초법적인 지위를 이어나갔다. 막상 빌헬름 1세는 프로이센 왕국이 사라지는 것이나 다름없고 황제 자리를 외교상 타국 군주가 오면 수여하는 '명예 [[대령]]'에 비유하며 탐탁해하지 않았다고 한다.[* 황제 칭호에서 이런 애매한 점이 드러나는데 전치사가 없는 독일 황제로 즉위했다. 만약 독일을 완벽히 소유한 군주면 '''of'''와 같은 전치사가 들어가며 로마식으로 시민의 추대면 '''독일인의 황제'''가 되어야 한다. 이런 어정쩡한 칭호를 쓴 이유는 비스마르크가 빌헬름의 요구와 시민의 요구를 절충했기 때문이다.] 비스마르크는 '아랫것들'이 좋아하는 [[내셔널리즘|민족주의]] 때문에 통일 국가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설득했다. 전쟁 승리의 삼인방 프로이센 재상 비스마르크, 육군 참모총장 [[헬무트 폰 몰트케|몰트케]], 국방장관 [[알브레히트 폰 론]]은 독일의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. 국민방위정부는 항복 조건으로 파리에서 [[1871년]] [[3월 1일]] 독일군의 개선식을 하루 동안 하는 것을 허용하여[* 이것은 중세적 로망이 남아 있었던 빌헬름 1세의 강력한 건의 때문이었고 비스마르크는 주저했지만 프랑스 신정부에서 의외로 이의 없이 받아들인다.] 시민들은 이를 한심하게 봤고[* 모두 검은 기를 내걸고 안 나왔다는 말은 국뽕 섞인 뻥이고 많은 파리 시민들이 신기해서 구경 나왔다.] 이를 허용한 [[아돌프 티에르|티에르]] 정부도 이후 의회와의 대립과 징병제 도입 문제 등으로 반발을 사 2년만에 물러나게 되었다. 다만 이때 프로이센군이 프랑스에 가한 굴욕을 프랑스는 매우 치욕스럽게 생각했고 이를 북북 갈며 [[베르사유 조약|때를 기다렸다.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